지난 토요일, 동인천역 북광장.

그곳에 있지 못한 만큼, 그곳에서 들려온 성소수자 길벗들의 비명 소리와 분노만으로도 내 가슴은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루종일 온갖 혐오와 저주, 욕설과 신체적 폭력을 온몸으로 견뎌낸 길벗들의 몸과 마음은 어떨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자신들을 ‘조건 없이’ 사랑한 예수의 이름으로 혐오와 저주를 내뱉고 욕설과 폭력을 행한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조건 없이 사랑받았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조건을 충족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우기는 웃기는 사람들.

그들을 작고 연약한 사람의 삶 한가운데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 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이들을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곳을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금도 여기저기서 신음소리와 분노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때마다 커다란 얼음 송곳으로 가슴이 꿰뚫리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그날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혐오와 저주를 내뱉는 이들에게 아주 강하게 반발했을 거다. 내 길벗들에게 손을 대는 그들을 강하게 밀쳐내고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을 거다.

눈에 보이지 않은 신은 우리들의 일상과 언행을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그 아비규환 속에서 내 길벗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을 거다. 성서가 말하는 ‘악귀 들린 이들’이 연상되는 이들. 예수의 이름으로 혐오와 저주, 욕설과 폭력을 저지른 저들은 예수를 드러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 있든지,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내서 퀴어 길벗들과 함께 걸을 거다. 내 길벗들에게 위협이 생긴다면 좀 더 앞에서 부딪힐 거다. 귀하고 귀한 길벗들이 더 큰 상처를 받지 않도록.

누가 뭐라든 성소수자 길벗들은 어디든지 있다. 퀴어는 그 누구와도 동등하며 독특하다. 어떤 이들이 혐오와 저주로 삭제하려고 해도 결코 삭제당하지 않는 존재들이다.

순박한 얼굴과 말로 “사랑하지만 죄는 죄입니다” 라고 내뱉는 그 ‘질문 없는 삶’ 너머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관된 사랑과 축복 안에 사는 이들이다.

그러니 하느님이 사랑하는 이,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 질문 잃은 이들과 교회의 일상과 존재를 쪼개는 질문으로 임하소서. 우리에게 그들을 견디고 끝내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사람들을 주소서.

우리의 슬픔과 분노가 저들의 혐오와 저주를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연대로 이어지게 하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하겠나이다.

그리고 이 밤, 상처입고 찢긴 영혼을 붙들고 슬피 우는 나와 당신의 길벗들, 당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시고 그 상처를 감싸주소서.

우리, 동등하며 독특한 성소수자 길벗들의 존재와 그들의 길벗인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 그리고 우리의 연대 가운데 끝내 승리하는 그날, 무지개 깃발을 힘차게 흔들며 기쁨과 눈물의 노래를 부르게 되리라.

(2018.09.10. pm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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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9/11 11:00 2018/09/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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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인천 퀴어 페스티벌’ 현장을 물리력으로 점거 중인 일부 개신교인들이 들고 있는 손팻말에 적힌 문구다.

그들 중에는 페스티벌 참여자들이나 진행하는 분들에게 저주를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

한 번만 생각해보자. 만약 이들이 그리스도교가 상대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인 사회에서 사는데, 그 사회에서 꽤 영향력을 가진 종교 집단 등이 이들을 향해 똑같이 말하고 행동한다면 어떠할까.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특정한 행사를 하려고 하는데, “너희들을 사랑하기에 너희 기독교인의 ‘존재’를 반대하는 거다! 너희들을 사랑하기에 너희들이 믿는 신념을 바꿔주려고 하는 거다!!”라고 한다면 어떠할까.

심지어 물리력을 행사해서 그 현장을 점거하고 참가자들에게 욕을 하거나 심각할 정도로 방해한다면 어떠할까.

소위 ‘순교자의 정신’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고 조용히 물러날까. 아닐 거다. 아마도 온 세계의 기독교인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종교 탄압’에 대해 항의할 거다. 더군다나 그 행사가 공격적인 선교 행사 등이 아니라면 더욱 더 강하게 항의할 거다.

그런데 지금 일부 개신교인들과 교회가 그토록 문제가 될 만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더군다나 정식으로 ‘집회 신고’가 된 행사 장소를 물리력으로 점거하고 행사 참여자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도 ‘종교 집회’라고 우긴단다.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

더군다나 이 말이 얼마나 우월감에 쩔어 있는 말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 하니 더 답답하다. 대체 누가 이들에게 이 땅에 있는 퀴어와 연대자들에 대해 ‘반대할 만한 존재’로 규정할 수 있게 했는가?

퀴어, 그러니까 ‘LGBTQIA+’가 의학이든 사회학이든 어떤 의미든 이 땅에 공존하는 ‘또 다른 성’으로 별 문제가 없다고 하는 여러 근거들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이들은 퀴어들을 ‘반대할 만한 존재’로 규정하는가?

오랜 시간 그리스도교 주류 전통에서 그들을 오해하고 정죄한 역사가 있다. 그런데 내가 속한 세계성공회의 몇몇 지역 공동체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그 과거를 뉘우치고 돌이키고 있다.

왜냐면 이들은 ‘신의 뜻과 의지’를 식별하고 해석할 때, 오직 ‘성서 문자주의와 근본주의적 해석’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의 뜻과 의지’를 통합적으로 경청하고 식별하기에 의학을 포함한 여러 ‘이성적 판단’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이 땅의 보수 개신교회는 우월감에 쩔어 자신들의 ‘신학적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여러 근거들을 못 본 척 한다. 그리고 ‘우리 신학과 신앙 전통은 퀴어에 대해 찬성/반대를 논할 만큼 우월하다’는 헛소리를 내뱉고 있다.

그리고 물리력을 동원하고 온갖 저주를 내뿜는다. 그게 ‘신의 뜻과 의지’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 가르침을 전하는 교회 지도자만이 ‘진짜 영적 지도자’라고 주장한다.

지금 ‘인천 퀴어 페스티벌’에서 온갖 혐오와 차별, 배제의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 일부 개신교인들. 그리고 이런 이들을 묵인하고 침묵하는 대다수 한국 교회와 신자들, 지도자들.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우월감과 이를 묵인하는 비겁한 선택이 그들을 ‘신의 반대편’으로 향하게 하리라는 거다.

그들은 우리와 동등하지만 동등한 몫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온갖 혐오와 차별, 배제와 폭력의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성서와 교회는 그처럼 우리와 동등하고 독특하나 그 ‘동등함과 독특함’을 존중받지 못하는 이들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곳에서 그 오래 전 “임금”으로 비유되었던 ‘우리들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던지는 돌을 맞고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자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 25:40, 공동번역개정판)

* 오늘 예정된 일정과 집안 일 때문에 인퀴에 함께 하지 못했다. 그곳에서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는 길벗들에게 마음 깊은 미안함과 힘찬 응원 그리고 사랑을 전한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폭력적인 일부 개신교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안타까움을 전한다.

(2018.09.08. pm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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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02:24 2018/09/11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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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이 차별”이라는 문장을 봤다. 아, 이 얼마나 명료하고 시원시원한(?) ‘성차별주의자’인가.

“성경이 말하는 여성의 종속성은 한 사람의 ‘여성임’ 즉 여성이라는 존재와 관계가 있다. 이것은 한 여성의 무엇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여성 하와와 창조와 타락에 기인한다. 창조시 부여된 권위의 차이를 ‘평등’이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권위적인 면에서 남녀 간에 차별을 두셨다면 이것을 궁색하게 인격적 동등성 내지 평등성이라고 부르기 것보다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차별하셨다고 말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이 차별을 ‘그러나 남녀의 인권은 동등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남녀 평등을 부르짖는 현대 사회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하나님의 질서를 현대 사회가 인간 차별로 부른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하나님의 질서가 인간의 눈에는 차별로 인식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인간의 언어를 두려워하여 인권이 동등하다거나 인격이 평등하다는 식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 정훈택, “존재론적 평등성, 기능적 종속성? : 우리의 여성 안수불가 논의에 관하여”, [신학지남] 1997년 가을호(제252호), 251쪽.

이 글은 무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신학대학교인 총신대학교에서 발행하는 [신학지남] 1997년 가을호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은 본교 재단 이사회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인 동기가 더 크게 자극했다.” 라고 용자다움을 뽐내며 시작하는 글.

이 글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왜 ‘성차별을 명령하는 존재’인지, 그런 ‘만들어진 신의 이미지’를 추종하는 교회가 왜 ‘성차별주의자’일 수밖에 없는지 절절하게 밝히고 있다.

이 글의 저자는 총신대학교 신약신학 교수이었던 정훈택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성차별을 명령하는 하나님’을 믿고 그런 하나님을 추종하는 ‘성경적인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글의 결론에서 이런 주옥같은(?) 문장을 토해낸다.

“우리는 바울 사도의 명령을 목숨을 다해 지킨다고 천명하고서는,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을 무시하면서까지 한국의 상황과 여권의 신장에 맞추려는 이중성을 내보이고 말았다. 여성 안수 문제는 여성의 가르침과 다스림에 대한 권한의 문제이다. 바울 사도가 남성의 머리됨이라는 원리를 사용하여 여성은 남성을 가르치거나 다스릴 수 없다고 설명한 것을 우리는 여성 안수 불가라는 명칭으로 지지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 정훈택, 위의 글, 262쪽.

대체 이런 사람에게 성서신학을 배운다는 건 어떤 걸까. ‘성차별주의자들의 집합소 = 성경적인 교회’라는 말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앉아 있었을 그 수많은 총신대학교 출신 신학생과 목회자들은 지금 뭐라고 가르칠까.

저런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지금도 합동측 교회에서 비슷하게 ‘변주된 헛소리’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살이 떨려온다.

가슴이 아려오고 슬픔이 저며온다. 신이여, 이 땅의 교회는 정녕 ‘포비아와 차별주의자들을 위한 저수지’란 말입니까.

그리 멀지 않은 21년 전,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모든 여성들과 다양한 성정체성을 갖고 살아간 신자들을 위해 잠시 머리 숙인다. 그들이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 수많은 혐오와 차별, 언어와 구조적 폭력을 기억한다. 그 따위 것들 때문에 상처 입었을 그 수많은 이들에게 마음 깊이 사과한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 변한 게 없는 것 같다는 슬픔을 더하여.

* 이게 비단 총신대학교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만의 문제일까. 그보다 더 극우적인 성서 해석과 주장을 하는 교단이 넘쳐나는 게 이 땅의 현실이다. 그들보다 열린 성서 해석과 주장을 한다는 교단 안에도 뭐, 쩝.

** 이들은 똑같은 논리를 변주하여 성소수자 길벗들을 비난하고 저주하며 낙인 찍고 있다. 이런 자료들을 읽으며 글을 써야 하는 이 밤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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