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눔] 신이시여

“신이시여, 제게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225쪽에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Serenity Prayer)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기도문. 새해를 맞이해서 성공회 길찾는교회 안팎에 있는 분들과 ‘또 다른 길 찾기’ 과정을 구성하려고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마주한 글귀.

‘신년’(新年)이란 이름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연말에 감기몸살로 며칠을 심하게 앓고 난 뒤 아직까지 온전히 회복하지 못해서 끙끙거리고 있는 사람한테는 큰 감흥이 없다.

‘가벼운 감기몸살로 몸과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는 나같은 사람도 이럴진데, 나보다 더 큰 무게의 숙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글귀 하나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넘어서 내게 속삭인다.

‘네가 살아있는 한, 너는 수많은 ‘식별’을 하고 그 한가운데에서 살아가야 한다.’

2018년이란 숫자로 쓰지만, 내게는 어제나 내일과 별 다를 바 없는 오늘. 그렇기에 더욱 이 기도를 좌표 삼아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나지막히 기도한다.

“신이시여, 제게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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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4 05:47 2018/01/04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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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입니다. 그 길고긴 시간 동안 정의로운 승리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싸운 사람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하면 모두가 성공하고, 실패하면 우리만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는 KTX 해고 승무원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억울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작고 연약한 사람들의 편으로 오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지금도 빛나지만, 온전한 복직으로 더욱 반짝거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빛날 사람들과 성탄을 맞이합니다. 이 땅의 모든 고난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 2017년 12월 25일 성탄 연합 감사성찬례, ‘세상과 이웃을 위한 기도’ 가운데.

작고 연약한 삶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각 지역에서 서로의 곁을 지키는 9개 나눔의집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형태로 시작된 교회들. 그들이 함께 모여 KTX 해고 승무원들의 온전한 복직을 소망하며 성탄의 가르침에 참여하는 연합 예배를 드렸다.

성찬에 참여한 분들을 헤아려 보니, 230~250여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간절히 소망한 것은, 더 이상 이 땅에 KTX 해고 승무원 분들처럼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 것. 그리고 억울하게 잃어버린 삶의 터전인 일터로 돌아가 한 명의 당당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일.

오늘 성찬예배를 마무리하며 모든 사람들이 큰 목소리로 함께한 ‘파송예식문’을 기억한다. KTX 해고 승무원 분들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억울한 사람들의 기도가 이뤄지는 그날까지.

✝︎ 주께서 우리들과 함께 ◉ 또한 당신과 함께 하소서.
✝︎ 이 땅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 하느님이 편드시나이다.
✝︎ 이 땅의 모든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을 ◉ 하느님이 편드시나이다.
✝︎ 이 땅의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을 ◉ 하느님이 편드시나이다.

✝︎ 하느님의 무한하신 평화가 우리들과 함께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항상 머무르게 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우리에게 강복하소서.
◉ 아멘

바로 지금 여기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으로 오셨음을 기억한다. 작고 연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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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1/03 04:12 2018/01/03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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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이 시간, 용산나눔의집 식구들의 밥상 초대로 함께한 길찾는교회 식구들은 대림절기와 사순절기마다 거리에서 억울한 사연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분들과 함께하며 거리 기도회를 드립니다.

거리 기도회가 주로 저녁시간이라 우리는 그곳에서 저녁 기도를 드리며 성모 마리아송가를 자주 부르곤 합니다.

그리고 대림 4주일인 오늘, 교회력은 성모 마리아송가나 시편 89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노래하도록 안내합니다.

우리 함께 성모 마리아송가를 저와 한 소절씩 번갈아가며 낭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오며, ◯ 내 마음이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을 기뻐합니다.
2. 주께서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 ◯ 이제부터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
3. 전능하신 분께서 내게 큰일을 행하셨으니 ◯ 주님의 이름 거룩하십니다.
4.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 대대로 구원의 자비를 베푸십니다.
5. 주께서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6.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습니다.
7. 굶주린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 부유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8.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 주님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9.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자비를 베푸십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저는 기가 막힐 정도로 억울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오랜 시간 싸워온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성모 마리아송가를 부르다가, 이 대목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 생각에 빠져들곤 합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으니, ◯ 이제부터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

돈과 권세를 가진 자들의 억지와 횡포 앞에서 바람막이나 방패 하나 없이 말도 안 되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그런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 이 대목을 부를 때면 당혹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무슨 정신 승리도 아니고, 당장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이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신이 나를 돌보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복되다고 한다니 말이 안 되는 황당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 본문을 보면 마리아가 겪은 상황이, 제가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과 생각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당황스러운 상태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짜고짜 ‘하느님의 힘’이란 뜻을 가진 천사 가브리엘을 마리아 앞에서 나타나게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고 당황스러운 상황인데, 천사 가브리엘이 입을 열어 전하는 하느님의 메시지가 난감합니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루가 1:28b)

갑자기 나타나 전한다는 말이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라뇨. 성서가 전하는 마리아의 반응은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몹시 당황하며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루가 1:29)

그러자 천사 가브리엘이 다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부분을 함께 읽어 봅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루가 1:30b-31)

하느님의 은총도 좋고 아기도 좋습니다. 문제는 이 메시지를 전달받은 마리아가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조건이 있다는 부분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루가 1:34)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약혼자가 있는 처녀에게 ‘네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미혼모가 된다’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는 어떤 의미로 전해졌을까요.

이 메시지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사건입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약혼자 요셉에게 당장 파혼당할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혀 목숨을 위협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라뇨.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라뇨. 여러분은 이해하실 수 있나요?

최소한 저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2년 전부터 동행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식구들이 이 땅에서 자주 부딪히는 비아냥거림과 멸시하는 듯하는 눈빛과 손가락질을 ‘마리아도 당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습니다.

길찾는교회 이름으로 3년 전부터 함께하고 있는 KTX 해고 노동자 분들과 성모 마리아송가를 부를 때마다,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는 복잡하고 미묘한 느낌이 ‘마리아에게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년 전부터 공개적으로 함께하고 있는 성소수자 길벗들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죄당하고 믿음으로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와 분노를 ‘마리아도 느끼지 않았을까’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성서가 기록하여 전하는 마리아는 제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루가 1:38)
별일 없이 멀쩡히 살고 있는데, 갑자기 천사가 나타납니다. ‘하느님의 힘’이란 이름을 가진 천사가 인생에 개입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은총을 가득 받았다느니, 하느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느니 하며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 메시지는 결국 죽을지도 모르는 낭떠러지 끝으로 마리아를 밀어냅니다.

이처럼 천사가 전한 하느님의 메시지가 위험이 가득한 상황으로 이끌어 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더 당황스러운 건 마리아가 그토록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메시지를 수용하자, ‘하느님의 힘’이란 이름을 가진 천사가 떠났다는 겁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젊은 미혼모가 겪을 수 있는 매우 위협적인 상황으로 밀어내더니, 그 상황을 수용하자마자 ‘이제부터 내가 곁에서 너를 지켜주겠다’도 아니고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라뇨.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주변에는 이런 일이 많습니다.

KTX 해고 노동자 분들이나 성소수자 길벗들, 그리고 우리 미등록 이주노동자 식구들은 저 또한 그렇게 부르기는 해도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만으로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삶과 일상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또한 그렇게 이름 붙여 불러지기 전까지 남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날들을 살던 존재들이었죠.

그런데 어떤 특징적인 조건들로 인해, 그런 조건들을 드러내는 명칭이 붙여져 불리며 살기 시작하면서 ‘다른 존재’가 되고 남들과 같고도 다른 삶과 일상을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 기준에서는 그 특징적인 조건들이 그들을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밀어냅니다. 그 조건만으로 위협적인 상황에 노출되며 살게 합니다.

이 땅에서 해고 노동자, 성소수자,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불리는 순간, 그렇게 불리기 전이나 이후나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고 늘 그렇고 그런 일상을 사는 사람인데, 더 이상 그럴 수 없기도 한 ‘다른 존재’이자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해고 노동자, 성소수자,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원해서 그리 사는 게 아닙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정한 ‘어떤 특정한 기준’과 다른 삶을 사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또 다른 삶과 일상을 살게 된 사람들은 각자 방식으로 신의 메시지를 마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그랬듯이 ‘그게 왜 나죠’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제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큰 삶의 질문과 일상의 싸움 가운데 신의 도움은커녕 신이 떠나버린 것 같은 고독과 마주하고도 그 질문과 싸움을 그만 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과 싸움을 각자 방식으로 품고 수많은 위험과 위협에 맞섰습니다.

각자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의 한계를 조금씩 넘어, 마침내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증언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한계 때문에, 미혼모라서, 해고 노동자라서, 성소수자라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라서 존재 자체가 ‘낙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낙인도 우리 각자가 ‘은총이자 축복인 존재’ 자체라는 걸 어찌하지는 못합니다.

이 사회가 우리를 뭐라 하든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 이 사회의 한계를 넘어 당연하고 평범한 삶과 일상을 스스로 얻어내고 있습니다. 해고 노동자, 성소수자,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고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는 우리가 원치 않았지만, 이 사회의 한계가 맞서 싸울 수 있는 신의 메시지를 전해 받았는지 모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미등록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KTX 해고 노동자.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그러니 기억합니다. 이 사회가 우리 각자에게 뭐라고 하든지 그대는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입니다. 흔들림 없이, 아니 잠시 흔들려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그렇게 우리는 어제와는 다른 세상을 약속하신 하느님과 동행하며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사무하 7:11).

끝까지 싸워 이겨내,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진리를 드러내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사회가 오랜 세월 동안 품어온 한계를 넘어, 예언자들의 글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넘쳐나는 시대와 사회가 올 것이란 믿음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로마 16:25-26).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라는 메시지는 ‘그러니 네게 아무 문제나 시련도 없을 거다’라는 게 아닙니다.

어떤 문제나 시련이 있더라도, 우리 존재를 부르는 이름이 지금은 잠시 비천한 취급을 받더라도, 우리 존재 그 자체는 그 누구도 함부로 비천하다 할 수 없을 만큼 ‘은총이 가득한 존재이며, 신이 함께하는 존재’라는 걸 기억하며 포기하지 않고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이 시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리아가 들었던 그 축복의 선언을 들려줍시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1독서, 사무하 7:1-11, 16 / 2독서, 로마 16:25-27 / 복음, 루가 1:26-38

* 2017년 12월 24일, 대림 4주일(Fourth Sunday of Advent).

——————

이번 주는 우리 미등록 이주노동자 식구들, 성소수자 길벗들, 25일에도 함께할 KTX 해고 노동자 분들에게 마리아가 들었던 천사의 전언이 어떤 의미인지 나눌 생각입니다. 오늘 따라 비천한 사람 취급 받던 ‘마리아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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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07:08 2018/01/0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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