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삶이 나를 노래해 주는 순간’을 꿈꾸지만, 현실은 ‘내가 삶을 노래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산다는 일 자체가 그리 쉽지 않으니, 어떻게든 살아내려면 그렇게 삶을 노래하며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삶을 노래하며 하루하루 버틸 뿐이지만, 내일은 무엇 하나라도 다르기를 간절히 노래하는 존재.

삶이란, 사람이란 그런 건가 보다.

그런 당신과 나를 위해, 이 밤 두 손 모아 잠시 기도한다. 내일은 오늘과 무엇 하나라도 다르기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기를..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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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5/09 02:38 2018/05/09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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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죠. 날이 너무 화창한데,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화창한 날을 만끽하지 못하는 날.

오늘이 딱 그런 날이네요. 바람이 심하게 불기도 했지만, 아침부터 은행 업무를 비롯해 이사 마무리를 위한 여러 가지 업무 진행이 계속 꼬이네요. 하나씩 해결하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훌쩍.

그 가운데 은행 창구 직원 분이 “당연한 거죠” 라고 한 말에 뚜껑이 열려 버렸죠. 너무 기초적인 내용이라 자신들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제게도 ‘당연한 것’이라고 전제하는 태도에는 동의가 안 되더군요. 그 때문에 화가 나서 차가운 말투로 클레임을 걸어 버린 ㅡ.,ㅡ;;;

이렇게 제 한계와 바닥을 또 한 번 경험하는 날. 헌데, 이후로도 계속 문제 발생. ‘아, 오늘은 이런 날인가 보다..’ 하고 큰숨 한 번 쉬고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돌아오는 일요일부터 함께 성찬예배를 드릴 공간 정리는 거의 마무리되었다는 점.

이 공간에 작게는 1만원부터 크게는 몇십 만원까지 여러 길벗들의 후원과 연대가 담겨 있죠.

아직 마무리를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많고 이래저래 도움 요청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뿌듯하고 감사하네요.

앞으로 이 공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여러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용산나눔의집 ‘사회적소수자 생활인권센터’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많이 부족하지 않은 공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철저히 제 한계와 바닥을 경험한 하루.

하지만, 그만큼 수고하고 애쓴 나눔의집 활동가 선생님, 길찾는교회와 필리핀 신앙 공동체 식구들, 자활과 인사랑케어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커지는 하루입니다.

무엇보다 이틀 연속 뒷정리 중인 짝꿍 춤추는햇살님, 해방촌에서부터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공간 구성을 함께 해주는 4평학교 나무님과 들꽃향린교회 신자 이상춘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이 너무 큽니다.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98길 6, 은성빌딩 2층 용산나눔의집.

미리 연락 한 번 주시고 종종 놀러 오세요~ 남은 하루도 우리보다 작고 연약한 취급 받는 사람들의 편인 우리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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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5/05 16:08 2018/05/0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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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이 고백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 하느님이 이 땅에 있는 우리 한가운데로 오셨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작고 연약한 ‘아기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점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은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과 승천의 이야기를 거쳐,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과의 동행’을 요청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과의 동행 가운데, ‘사랑이신 하느님’을 우리 이웃과 이 세계에 드러내고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서를 보면 이렇게 이웃과 세계에 ‘사랑이신 하느님,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을 드러내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졌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이 우리 이웃과 세계에 만나기 위해서는, 바로 나와 당신,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 드러나고 증언된다. 그런 면에서 혐오와 차별, 배제를 일삼는 신자는 하느님을 드러내거나 증언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더군다나 성서와 교회가 가르쳐 온 이야기를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며 배제하는데 ‘활용’하는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는 ‘사랑이신 하느님,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과 별 상관이 없다.

그들은 그저 ‘현실 구조 속에 매몰된 종교의 영향력’을 사모하며 쫓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에게 하느님은 ‘이성애-가부장제 사회와 관계, 정상가족담론’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들과 ‘동일한 존재’로 이해되며 고백될 때가 많다.

그러나, 그건 ‘하느님의 탈’을 덧입힌 ‘힘과 영향력’일 뿐이다. 나와 우리들의 하느님은 아니다.

성서와 교회가 일관되게 고백하고 증언해 온 하느님은, 분명 우선적으로 ‘약자들의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약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건, 그 약자들이 행복한 세계와 관계가 바로 ‘모두가 행복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 개정판, 요한의 첫째 편지 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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