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순복음1이란 교단 전도사로 개신교 말단 사목자 시절,
교회라는 이름을 쓴다면 마땅히
임시적이나마2 참된 주님의 몸으로서 존재해야 하기에
그런 주님의 몸인 교회가 그 건강함과 올바름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맘을 간직한 전도사들끼리의 농담이 있었다. "내려놔."
그 뜻은 교회에서
그 건강함과 올바름을 말해야 한다는 예언자적 소명을 잠시 내려놓으라는 것이었다.
당시 몸담고 있던 신앙 공동체인 순복음교회는,
외형은 매우 크나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끈끈한 연(聯)으로 묶여 있어서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골치 아픈 전도사로 찍히면
어느 교회에 원서를 넣어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때문이었다.
원서는 넣을 수 있으나 채용은 안 되니 더는 교단 소속의 전도사가 될 수 없고,
그런 사람은 그저 임시직 수준의 전도사를 근근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니 예언자적 소명은 잠시 내려놓고 윗분의 사목 방향을 충실히 도우며
일단 목사 안수를 받으라는 뜻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내려놔."
그리고 슬픈 웃음 뒤에 눈물을 삼키며 약속했었다.
안수를 받고 교단 내에서 소리를 낼 수 있는 때가 되면
예언자적 소명을 잊지 말고 몸으로 삶으로 그리고 하나 된 목소리로 살아가자고..
# 2
난 이젠 더 이상 그 약속을 못 지킨다. 그 공동체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 공동체에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며 살고 계신,
나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느님께 빌어주던
그 많은 산동네 달동네의 할머님 권사님들과 아주머니 집사님들이 마음에 밟혔으나..
사목자로 불리는 사람으로 더는 그곳에서
신앙적 양심으로 숨을 쉬고 살 수 없기에 그 곳을 떠났다.
그리고 그나마 이 땅에서 신앙적 양심을 꿋꿋이 지키며
내가 속해있던 신앙 공동체인 순복음교회와 각을 이루면서
순복음교회 같은 보수적 · 물량주의적 교회 공동체에 대해 과감하게
비아냥(?)거리고 비판할 수 있는 정도의 깨끗함은 가지고 있는 성공회 공동체로
그 누구의 안내없이 스스로 찾아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과는 전혀 다른 곳인 나눔의집에서
공동체의 한 일원이자 실무자 선생으로 2년을 조금 넘게 살았고
그 이후 다시 신학대학원 2년 과정을 겪으며
그 예언자적 소명과 용기에 대해 깊이 체험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 3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그토록 다른 신앙 공동체에 대해 예언자적 소명과 깨끗함,
그리고 역사적 · 신학적 · 사목적 검토와 배려를 외치는 것으로 유명한
이 '성공회'라는 신앙 공동체에 전도사라는 사목 후보생으로 와서도
순복음교회에서 듣던 농담과 비슷한 의미의 농담을 자주 듣게 되는 것이다.
난 지금도 그 농담을 자주 듣는다. "내려놔."
. . . . .
# 4
정말 내가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언자적 소명과 용기는 나이 제한이나 직분 제한이 있던 것일까?
나이는 4~50 쯤이 되고 직분은 몇년차 사제나 목사 정도는 되어
신앙공동체에서 누구의 입김에서든 쉽게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때가 되어야 예언자적 소명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었나..
이런 현실은 어떤 신앙 공동체이든 그 위계와 권위가 분명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공동체에는 변할 수 없는 현실인가?
개신교에서 사목자로 신앙공동체를 섬기면서 신앙적 양심으로 인해
큰 갈등과 위기를 느끼고 있는 후배 하나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형, 성공회는 역시 다르죠?"
난...
쉽게 대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Posted by 자캐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