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를 즐겨하는 나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수첩이 꽤 많이 있다.
그때마다 끄적거리던 메모장에는
어느날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게 적어 놓은 많은 '조각 얘기'들이 있다.
사람에 대한 얘기.. 날씨에 대한 얘기.. 느낌에 대한 얘기.. 슬픔이나 사랑에 대한 얘기..
문득 그 이야기들이 생각나 수첩을 뒤적거릴 때이면,
언제인가 이 얘기들을 잘 정리해 둬야 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새 나는 메모들로 꽉찬 수첩을 서랍 한켠에 넣어 두고서는
새로운 수첩을 꺼내서 다시 새로운 날들의 조각들을 메모하기 시작한다.
# 2. 여백.
그렇게 하나둘씩 수첩이 늘어가면서도,
정리되지 못한 지난 날들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감사했다.
나도 언젠가 나이가 들어 노쇠하게 되면,
나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부담되거나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있게 될 거란 걸 잘 알기에,
나는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그렇게 바쁘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던 것이다.
꽤 오랫동안 '바쁘다'는 것은, 내 존재의 또다른 이야기이었다.
그러나..
정리하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둔 수첩들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는 요즘.
난 지금의 내 스스로가,
나에게 부담을 주는 존재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내 보폭으로 내게 주어진 '길'을 걸으리라고 그토록 다짐했건만,
어느새 다른 이들이 요구하는 보폭으로 그들이 원하는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스스로에게, 내 보폭으로 걷는지를 확인하며
이 길이 진정 내 길인지 돌아보는 '여백'을 주고 사는지..
사람이란 '관계' 속에서 확인되는 존재라는 면이 있기에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한 만족감이나 의미만으로는 살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빽빽하게 쓰여진 수첩 속의 글씨는 누구라도 알아 볼 수 없듯이
여백이 없는 생활은 그처럼 스스로 조차도 알아 볼 수 없는 수첩과도 같을 것이다.
# 3. 살짝 미친다는 것.
그렇기에 요즘의 내게 너무나도 필요한 것은, '살짝 미치는' 것이다.
늘상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배려하며 살아야만 하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만나고 싶고 내가 느끼고 싶으며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말하며 살 수 있는
그렇게 '살짝 미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내겐 너무나도 간절하다.
그리고 그렇게 살짝 미친 나를 이유없이 껴안아줄 수 있는 사람도 간절하다.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만이라도.

Posted by 자캐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