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구원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한 견해를 물어오면,
나는 신학적 용어로 '신인협력설 Synergism' 또는
'복음적 신인협력설 Evangelical Synergism'이라고 불리는 견해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내가 이러한 견해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하느님이시라면, 우리의 고통까지도 함께 나눠 지시는 하느님이라면,
그 정도의 '자유'와 '책임'은 허락하시며 동시에 요청하시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나이기에 교우들과의 대화나 질문 앞에서 매우 조심스러워지게 될 때가 잦다.
그분들과의 대화나 질문이
바로 매 순간 '협력의 순간'이며 그러한 '요청'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령을 받은 지 채 한 달이 안 된 내게
몇몇 젊은 교우들이 매우 '민감한 질문'을 할 때가 생긴다.
특히 '신앙'에 대해, 그중에서도 매우 '섬세한 답'이 필요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문제는
첫째,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이 땅의 성공회 공동체가 간직해 온
'오랜 관례'나 '인식'과 그 '관례'나 '인식'을 '진리'처럼 여기는 분들에 대한
공격이나 비난이 되지 않게 대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이다.
둘째, 동시에 그러한 '관례' 가운데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아닐 수도 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내 안의 '두려움'이나,
내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 내가 당할지도 모르는 '불이익'에 대해
무척 조심스러워하시며 묻는 그분들의 '안타까움'을 모르는 척하기도 힘들단 것이다.
그래서 빙그레 웃거나 큰 웃음으로 답을 마무리할 때가 점점 많아진다.
'귀머거리 1년, 장님 1년, 벙어리 1년'이라고 했던가..
나는 오늘도...
점점 더 자주 기도하게 되고 더욱더 자주 주님을 노래하게 되는 나를 만난다.

Posted by 자캐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