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론을 배운다는 건 ‘하나의 도구’를 얻는다는 것이지 ‘정답’을 안다는 게 아니다.

최근에 ‘공공성’을 강조하며 ‘공공신학’이 한국 교회에 필요하다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그런데 그분들 가운데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낀 적이 별로 없는 ‘공공신학’이라.. ㅡ.,ㅡ;;

이를 비판하면 이론을 무시한다고 할 터이니 쉽게 말하기 어려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과거에) 신학자 누구는 그 현장을 이렇게 분석했다 저렇게 행동했다..’

난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현장에서 사람들과 제대로 부딪혀 본 적이 없는 분들이 가르치는 공공신학은 어떤 의미와 무게를 갖는 걸까. 대체 그 공공성과 공공신학은 뭘까.

맘이 답답해진다. 이론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그 이론이 현장에서 사람들과 온몸으로 부대끼지 않으면 그저 ‘그럴듯한 멋스러운 말잔치’에 가까워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시기에 필요한 개념과 신학일 텐데, 이리 비딱하게 반응하니 미안해지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우리 안팎에 도사린 온갖 악과 싸우느라, 모호한 경계 어디쯤에서 겨우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의 눈물과 땀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담아내지 못한 개념과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공공성이나 공공신학을 강조하며 가르치는 분들이 있다면, 현장에서, 그것도 그 현장에서 어렵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눈물과 땀 냄새가 물씬 나는 일선에서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거기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조심스럽게 꺼내는 이야기라면, 나는 내 돈을 내고서라도 찾아 들을 마음이 한가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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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1/04 05:50 2018/01/0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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