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과응보의 삶을 넘어, 하느님의 영광과 더 큰 일을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오늘 1독서인 사무엘상 3장은 야훼께서 사무엘을 불러 실로의 제사장인 엘리와 그의 집안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알려주신 일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던 날, 반복되는 사무엘의 이상한 행동으로 제사장 엘리는 사무엘에게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날이 밝자 엘리는 사무엘을 불러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상 3장 17절부터 18절까지 읽어 봅시다.

엘리가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나에게 숨기지 말고 말해 다오. 너에게 하신 말씀을 한마디라도 숨긴다면, 하느님께서는 너에게도 나에게 내리시는 벌 못지않은 큰 벌을 내리실 것이다.” 하고 다그쳤다. 그래서 사무엘은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 엘리는 중얼거렸다. “야훼께서 하시는 일, 어련하시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들려준 내용을 듣고 난 뒤에 제사장 엘리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야훼께서 하시는 일, 어련하시랴!”

이처럼 히브리 성서인 제1성서는 ‘인과응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제사장 엘리가 “야훼께서 하시는 일, 어련하시랴!”고 말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와 그의 자식들이 행한 악한 일들 때문인 것이죠.

1독서 가운데 12절부터 14절까지 함께 읽어 봅시다.

“그 날이 오면, 내가 엘리와 그 집안을 두고 말한 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지리라. 너에게 알려주거니와, 나는 엘리의 가문을 심판하여 끝내 벌하고야 말겠다. 그것은 제 자식들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엘리의 집안을 두고, 제물이나 예물을 소홀히 다룬 그 죄는 영영 용서해 주지 않으리라고 맹세하였다.”

제사장 가문인 엘리와 그의 자식들은 제물이나 예물을 소홀히 다뤄 하느님을 모독합니다. 그들은 대체 어떤 죄를 진 것일까요?

저와 함께 오늘 1독서 앞 장인 2장 12절부터 17절까지 번갈아가며 읽어 봅시다.

12 엘리의 아들들은 망나니들로서 야훼를 몰라보고
13 사람을 대하는 사제의 규정도 무시하였다. 사제의 시종은, 누가 제사를 드릴 때 고기를 삶고 있으면 삼지창을 들고 다니며
14  가마솥이나 노구솥이나 뚝배기나 냄비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휘저어서 삼지창에 꽂혀 나오는 것은 모두 가져갔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로에 와서 제사를 드릴 때마다 그렇게 하였다.
15 사제의 시종은 그뿐 아니라 기름을 태워 바치기 전에도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와서 "사제님은 삶은 것은 받지 않으시고 날것만 받으시니, 사제님께 구워드릴 고기를 내놓아라." 하고 생떼를 썼다.
16 그 사람이, 기름을 먼저 태워 바친 다음에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해도 "그건 안 된다. 지금 내지 않으면 강제로 빼앗아 가겠다." 하면서 을러메었다.
17 이렇게 그들이 시종들을 시켜 저지른 잘못은 야훼께서 보시기에 너무나 심하였다. 그들은 야훼께 바치는 제물을 이처럼 모독하였던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에게 야훼는 안중에도 없는 존재이었습니다. 오히려 야훼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좋은 핑계이자 도구’이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을 하느님과의 관계로 잘 안내하는 제사장의 직무에 충실한다는 전제로 제물의 ‘일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부’를 착취하거나 ‘가장 좋은 것’을 먼저 받아가는 안하무인의 죄를 범했습니다.

이에 대해 제사장 엘리는 아들들을 꾸짖는 듯하지만, 실은 큰 의미가 없는 책임 회피만 했습니다.

엘리는 매우 늙었다. 그는 자기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온갖 못된 짓을 하였고 그리고 만남의 장막 문간에서 봉사하는 여인들의 방에 들기까지 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들을 꾸짖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하느냐? 나는 너희가 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다. 이놈들아, 못쓴다! 그런 추문이 야훼의 백성 사이에 두루 퍼져서 내 귀에까지 들려오게 하다니.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서 그 사이에 서주시겠지만, 사람이 야훼께 죄를 얻는다면 누가 그 사이에서 빌어주겠느냐?” 그런데도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야훼께서 이미 그들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 (사무상 2:22-25)

이미 그 힘과 패악함이 너무 커서 제사장 엘리의 눈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평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아들들에게 ‘그리하면 안 된다’는 정도의 경고에 그쳤을 뿐입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자신들의 시종들만 시켜도 통할 만큼 그 악행의 힘과 패악함이 큰데도 어떤 벌이나 제재 없이 그저 말 뿐인 경고에 그칩니다.

결국 야훼께서는 엘리의 아들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사무엘을 통해 제사장 엘리도 알게 하신 당신의 말을 모두 이뤄지게 하셨습니다(사무상 3:19).

오늘 2독서인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6장 12절 말씀처럼,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는 존재들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는 책임과 함께 주어진 선물입니다. 우리 함께 2독서에서 13절 뒷부분을 읽어 봅시다.

“몸은 음행을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몸을 돌보아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로 선택하여 부르셨을 때에 그 자유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인 지체로서 누리는 것들을 말합니다(1고린 6:15).

다시 말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하나로 선택되어 부름 받은 존재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누리도록 초대받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1고린 6:17, 20b)

이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하나로 선택되어 부름 받은 존재, 그 영광의 자유를 누리고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초대받은 존재가 그 ‘선택과 초대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거나 자각하지 못하며 살 때에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느님은 제사장 엘리와 그의 가문에게 하셨던 것처럼 예언자들을 통해 경고하십니다. 그 선택과 초대의 무게, 그 은총의 가치를 기억하며 살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하십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우리 안팎에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함께함을 깨닫고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시죠(1고린 6:19).

성서는 그런 은총을 받은 존재가 그 은총을 망각하고 엘리의 아들들처럼 사리사욕의 죄와 음행에 빠져, 그리스도의 몸까지 죄악에 물들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 은총의 가치를 망각하고 하느님의 선택과 초대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하느님의 지체들에게 제사장 엘리처럼 의미 없는 경고나 하면서 책임 회피하기 바쁜 지도자들의 마지막이 어찌될 지에 대해 경고합니다.

이는 단순히 인과응보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 복음서가 기록한 것처럼 예수께서 나타니엘에게 말씀하신 내용에서 우리는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요한의 복음서 1장 50절부터 51절까지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시고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선택과 초대, 그 은총의 가치를 망각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1성서인 히브리 성서에 기록된 몇몇 신앙의 선조들만이 본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열린 하늘이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존재이자 장소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주님께 이어져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야훼께 인과응보의 상과 벌을 받는 존재를 넘어, 하느님의 영광과 더 큰 일을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단순한 인과응보의 죄를 넘어 하느님의 영광과 더 큰 일이 드러나는 걸 가로막는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 각 사람과 우리들의 공동체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당신의 더 큰 일을 이루십니다.

더불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성서가 말하는 ‘음행’이 단순히 개인 차원의 죄로 좁게 해석되는 게 아니라 사회와 구조적 차원의 죄로 제대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어진 존재 안팎에 함께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는 놀랍고 큰일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성령은 항상 역사 속에서 활동하며 교회 안에서 특별한 창조성을 통해서 활동하는 바, 희망의 근원이며 신앙과 삶의 기쁨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성령은 성령강림절의 전례에서 사용되는 말인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pater pauperum)로서 나타난다. 이 아버지는 현실사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허락하지 않은 자유를 찾고 조직하라고 그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 지금은 우리가 소리쳐 기도하고 울부짖어야 할 때이다. '오소서, 성령이여, 당신 빛의 거룩한 광채를 보내소서!'라고 말이다. 성령의 임재가 없으면, 우리는 이 위기로 인해, 깨끗해지고 정화되며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대신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에 빠져들고 만다."ᅠ
- 레오나르도 보프, <오소서, 성령이여>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쪽 가운데.

* 1독서, 사무상 3:1-20 / 2독서, 1고린 6:12-20 / 복음, 요한 1:43-51

* 2018년 1월 14일, 연중 2주일(Second Sunday after the Epiph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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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1/14 02:25 2018/01/14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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