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규정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오늘 복음서 말씀이 기록하여 전하는 이야기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논쟁입니다.

복음서 말씀인 마르코의 복음서 7장 1절부터 4절은 이 논쟁이 왜 시작되었는지 설명합니다. 저와 같이 한 구절씩 번갈아가며 읽어봅시다. 제가 홀수 절을 읽고, 여러분이 짝수 절을 읽어주십시오.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께 모여왔다가  2 제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원래 바리사이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들은 조상의 전통에 따라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었고  4 또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반드시 몸을 씻고 나서야 음식을 먹는 관습이 있었다. 그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았는데 가령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 같은 것을 씻는 일들이 그것이었다.

‘음식을 먹는데 손을 씻지 않고 먹었다.’ 대체 이게 무슨 문제일까요?

요즘 우리에게는 그저 위생 관리의 문제 정도로 다가오니, 성서가 기록하여 전하는 이 논쟁에 대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5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그 부분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하고 따졌다.” (마르 7:5)

이 논쟁의 핵심은 단순하게 ‘손을 씻었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었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강조하듯이 ‘조상의 전통을 따르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그 핵심이었습니다.

당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종교적 열성이 강한 이들에게 조상의 전통인 율법이 가르치는 ‘정결규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지키는가’라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지키지 않았던 건 ‘손을 씻었느냐’는 위생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조상의 전통인 율법이 가르치는 정결규정을 지켰느냐’는 문제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처럼 ‘조상의 전통인 율법이 가르치는 정결규정을 완고하게 해석해서 지키느냐’는 게 왜 그리 중요한 걸까요?

이는 당시 종교적 열성을 강조하던 이들에게 ‘경건한 삶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 이러한 경건한 삶에 참여하고 유지하는 이들만이 ‘이스라엘의 회복’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석되었기에 중요했습니다.

당시 종교적 열성을 강조하던 이들이 말하는 ‘정결규정을 지키는 경건한 삶’이란 거룩하신 야훼 하느님이 베푸는 은총 안에 머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정결규정을 아무렇지 않게 어기는 행동은 이들에게 매우 ‘불경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던 겁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앞선 이들이 정한 형식에 몸담고 이를 지켜 행함으로 그들 조상의 전통이 강조하는 야훼와의 동행을 계속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따져 물었던 겁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르코의 복음서 7장 6절부터 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저와 번갈아가며 읽겠습니다.

6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무어라고 예언했느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7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했는데 이것은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를 두고 한 말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

무슨 말일까요? 한 마디로 ‘너희가 조상의 전통이라며 강조하고 지키는 그 규칙이 진짜로 지키고 있는 게 무엇이냐’고 반문하시는 겁니다.

교회의 스승 중 한 명인 리옹의 이레네우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했습니다. 우리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바리사이들은 자기 조상들의 전통이 율법을 보존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모세 율법과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가 "너의 술은 물로 싱거워졌다"(이사 1:22)라고 한 것은, 조상들이 하느님의 순수한 계명을 물 같은 전통과 섞어 버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 그들은 물과 포도주를 섞는 부정행위로 하느님의 율법을 거짓으로 꾸몄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법에 맞서 오늘날에도 바리사이법이라고 불리는 그들만의 법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이 법에서 어떤 것은 빼 버리고 어떤 것은 덧붙이며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해석합니다. 그러고는 이런 일을 위하여 자기네 스승들이 꼭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 리옹의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 4,12,1-2.,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Ⅲ>, 162쪽.

예수님은 당신에게 따져 묻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진짜로 지켜야 할 것은 외면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지켜야 할 것을 만들어 강요하고 있음을 간파하셨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을 ‘하느님의 가르침’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지키라고 강조한 건 외면하던 이들이 자신들이 만든 걸 ‘조상들의 전통이자 하느님의 가르침’이라고 포장하여 가르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빌려,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는 그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마르 7:6b-7)

그렇다면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버린 하느님의 계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함께 오늘 2독서인 야고보의 편지 1장 27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 떳떳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물론, 당시 종교적 열성을 강조하던 이들이 지켜 행하기를 힘쓰던 정결규정은 ‘정결한 삶을 통해 거룩하신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물기’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정결한 삶’은 ‘어떤 형식의 기준’을 지키고 머물러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작고 연약한 이들을 돌보고 스스로를 ‘힘과 영향력’이라는 맘몬의 유혹에 물들지 않도록 지키는 삶이 ‘정결한 삶’, 다시 말해서 ‘거룩함에 참여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 여기서 오늘의 시편인 시편 15편을 함께 읽어봅시다. 제가 홀수 절을 읽고, 여러분이 짝수 절을 읽어주십시오.

1 야훼여! 당신 장막에서 살 자 누구입니까? 당신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자 누구입니까?
2 허물없이 정직하게 살며 마음으로부터 진실을 말하고
3 남을 모함하지 않는 사람, 이웃을 해치지 않고 친지를 모욕하지 않으며,
4 야훼 눈 밖에 난 자를 얕보되 야훼 두려워하는 이를 높이는 사람, 손해를 보아도 맹세를 지키고,
5 돈놀이하지 않으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지 않는 사람. 이렇게 사는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오늘의 시편인 시편 15편이 기록하여 전하는 노래처럼 야훼 하느님의 ‘거룩한 산’에 머물 수 있는 이들은 ‘그 삶의 선택들이 하느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전례와 성사의 형식을 어떻게 지키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 형식이 무엇을 가리키고 무엇을 지키라고 있는 것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어떤 개신교인들처럼 ‘주일성수’라는 헛된 형식을 만들어, ‘주일성수를 어떻게 지키느냐’를 가지고 논하는 어리석은 잘못을 반복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논박했던 것처럼 형식의 유지만 강조하고 그 안에 담긴 형식을 통해 지키려는 정신과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건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지켜 행하라고 했던 건, ‘어떤 형식’이 아니라 그 형식을 통해 ‘지켜야 할 사람들’이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을 지키는 일에는 어떤 보탬도 뺌도 없습니다.

우리, 오늘 1독서인 신명기 4장 1절부터 2절까지 한 목소리로 읽고 오늘 말씀 나눔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너 이스라엘은 들어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가르쳐주는 규정과 법규를 듣고 지켜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선조의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은 한마디도 보태거나 빼지 못한다. 내가 받들어 너희에게 전하는 너희 하느님 야훼의 계명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신명 4:1-2)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본기도
주 하느님, 주님은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양심을 바로 잡아주시나이다. 비오니, 성령의 감화로 주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닫고, 큰 영광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1독서, 신명 4:1-2, 6-9 / 2독서, 2독서, 야고 1:17-27 / 복음, 마르 7:1-8, 14-15, 21-23

* 2018년 9월 2일, 연중 22주일(Fifteenth Sunday after Pentecost Proper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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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09/02 08:50 2018/09/0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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