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그리고 용산나눔의집과 길찾는교회. 우리는 같은 성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그 한계와 가능성을 깊이 반성하고 돌아보게 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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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계와 세계로 나아가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주님의 가르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됩니다. 이 가르침은 간통만 빼고 이혼을 금지합니다.”
- 대 바실리우스, <서간집> 188,9.,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Ⅲ>, 205쪽.

이 말은 교회의 스승 중 한 명이자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모두에게 ‘성인’이자 ‘교회박사’로 칭송받는 대 바실리우스가 오늘 복음서 말씀에 대해 해설한 부분입니다.

4세기에 활동했던 바실리우스 주교는 지금보다 훨씬 남성중심적인 고대 사회와 교회에서도 “주님의 가르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는 걸 강조했습니다.

그가 실제로 여성에 대해서 어떤 태도와 입장을 가졌든지 간에 “주님의 가르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됩니다.”라는 말은 고대 교회가 주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하도록 안내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실마리입니다.

전에도 몇 번 강조해서 말씀드렸듯이, 교회는 그 교회가 속해있거나 관계 맺고 있는 사회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회에 속한 미국성공회, 필리핀 사회 속의 필리핀성공회 그리고 한국 사회에 속한 대한성공회는 같은 성공회 공동체임에도 꽤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때문에 다른 사회에 비해 ‘성 평등과 정의’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미국 사회에 속한 미국성공회는, 기본적인 남녀평등은 물론 다양한 성에 대한 평등한 인식과 정의로운 입장을 갖는 걸 꽤 중요하게 여기며 고민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필리핀 식구들이 자란 필리핀성공회나 지금 우리가 속해있는 대한성공회는 어떨까요?

보통 한 사회에서 어떤 특정한 이슈가 문제 자체가 안 되는 경우는 둘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 이슈가 충분히 소화되어 잘 작동하고 있는 편이거나, 아니면 아예 거론조차 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나쁜 상태입니다.

4-5세기 고대 사회와 교회에서는 남장여자 수도사에 관한 이야기가 간간히 전해졌습니다.

주로 사회적·경제적 여건이 되는 여성들에게 가능했던 이야기지만, 당시 여성은 결혼이 자아실현의 대부분이었던 사회와 교회에서 그들은 ‘다른 세계’를 꿈꾸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은 당시에 다양한 형태로 시작되던 ‘수도원 운동’이나 ‘순례 여정’에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참여합니다.

안타깝게도 고대 사회와 교회에서는 ‘여성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남자 혹은 남자와 같은 여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런 남장여자 수도사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여성성’은 ‘유혹의 상징’처럼 이해되곤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여자임을 속이고 수도원 운동에 동참한 일부 여성들은 지나친 금욕생활로 ‘더 이상 여성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게 강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적·경제적 여건이 되는 여성들은 끊임없이 ‘다른 세계’를 꿈꾸며 가부장중심적인 사회와 교회에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 바탕에는 서두에 제가 인용한 대 바실리우스의 해설처럼 “주님의 가르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는 기본 입장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물론 여러 기록과 자료들을 살펴보면, 이런 입장은 당시 사회와 교회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자와 여자에게 주님의 가르침은 차별적으로 적용되었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서가 전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억압적인 방향과 방식’이 아닌, ‘사랑과 해방을 향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며 금기에 도전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오늘 1독서 창세기 말씀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신성한 결혼을 거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룬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그들은 이것만이 하느님의 축복 가운데 있는 관계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같은 말씀이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과거에 자신이 머물던 관계를 떠나 새로운 관계로 나아간다’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향해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서로 깊이 존중하며 연결되는 새로운 관계야말로 하느님의 축복 가운데 있는 관계라고 이해합니다.

오늘 2독서인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이 그분을 위해서 있는 하느님’은 당신을 따르는 우리들이 당신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 겪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히브 1:10).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느님이 선물하는 사랑과 해방을 얻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으로 안내하는 신비한 입구’가 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안내하는 신비한 입구’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리낌없이” 우리를 “형제자매”라고 부르신다는 겁니다(히브 1:11).

이처럼 성서가 기록하여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우리의 한계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주님의 고난은 그냥 고난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종이 아닌 형제자매로 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형제자매로 대하는 건, 우리가 이 땅에서 그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이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땅에서 모든 생명들을 억압하는 관계를 가로질러 ‘사랑과 해방’이라는 새로운 관계와 세계로 나아가는 일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성서는 주님의 가르침이 문자에 갇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서는 주님의 가르침이 그 문자를 넘어 여러 은유와 비유 그리고 상징을 통해, 우리를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자 문이며 길’이 된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니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매이며 형제인 여러분, 우리 모두 성서를 통해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누군가를 ‘억압하고 조정하는 방향과 방식’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경계합시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과 해방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가르치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시는 ‘새로운 관계와 세계’가 시작되는 놀라운 경험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강조하십니다(마르 10:15)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관계와 세계는 어린이처럼 ‘순진한 마음’, 다시 말해서 ‘두 팔을 활짝 벌린 환대와 사랑의 마음과 태도’를 통해서만 허락받는다는 걸 기억합시다.

오직 환대와 사랑으로 새로운 관계와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를 허락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잠시 묵상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 본기도
주 하느님,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순결한 믿음으로 주님을 섬겨, 마침내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1독서, 창세 2:18-24 / 2독서, 히브 1:1-4, 2:5-12 / 복음, 마르 10:2-16

* 2018년 10월 7일, 연중 27주일(Seventeenth Sunday after Pentecost Proper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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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캐오

2018/10/08 01:30 2018/10/08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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